괄운지례(适雲之例)

역적 이괄(李适)과 신치운(申致雲)에게 연좌(緣坐)의 형률을 적용했던 전례를 가리킨다.

괄(适)은 이괄을, 운(雲)은 신치운을 가리키는데, 역적을 부를 때 이름 중 한 글자만을 거론하던 관례에 따라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괄은 인조 2년(1624)에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였다가 실패하였다.

이괄이 반역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의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으로 책봉이 되고

외직(外職)인 평안병사(平安兵使)에 제수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서 거병하였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자신과 아들 이전(李栴)이 역모 혐의를 받아 궁지에 몰리자 어쩔 수 없이 거병하였다는 설이다.

이괄은 거병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아들 이전과 함께 부하에게 목이 잘려 살해되었다.

인조는 이괄의 아내 이예(李禮)와 아우 이돈(李遯)을 참형(斬刑)에 처하였다.

이때 좌찬성(左贊成) 이귀(李貴)는 ‘역적의 아내를 참형에 처하는 것은 법전에 없는 것이므로 새롭게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하였으나

인조가 따르지 않았다.

신치운은 영조 31년(1755)에 을해옥사(乙亥獄事)의 주모자로 능지처참(凌遲處斬)을 당하였다.

을해옥사는 을해년인 영조 31년에 있었던 두 가지의 역모 사건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하나는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으로, 나주(羅州)에 정배(定配) 중이던 소론(小論) 출신의 윤지(尹志)가

그곳 객사(客舍)에 흉서(凶書)를 내걸었다가 발각되어 많은 소론들이 처형당한 일이다.

또 하나는 토역경과시권사건(討逆慶科試券事件)으로,

나주괘서사건을 마무리하고 시행한 토역경과(討逆慶科)에서 소론 출신인 심정연(沈鼎衍)이 답안지인 시권(試券)에 흉언을 기록하여 제출한 사건이다.

소론인 신치운도 위의 사건과 관련되어 영조의 국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신이 갑진년 이후로는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역심(逆心)입니다. 심정연의 흉서도 신이 지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갑진년은 경종이 승하하던 해인 경종 4년(1724)을 가리키는 말로,

경종이 게장과 땡감을 먹은 뒤에 병이 나서 승하하였기 때문에

소론들은 당시 왕세제(王世弟)였던 연잉군(延礽君) 쪽에서 일부러 게장을 올려 살해한 것으로 의심을 하였다.

영조는 그해 5월 20일에 신치운을 대역죄(大逆罪)로 처형하도록 하면서 그의 아내도 역적 이괄에게 적용했던 형률에 따라 거행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 영조가 이괄의 아내를 참형에 처할 때 이귀가 반대했던 의견이 옳다고 하면서

‘이번부터 역적의 아내는 처형하지 말고, 앞으로도 수교(受敎)로 정식을 삼으라.’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신치운의 아내 민연(民延)을 흑산도(黑山島)에 여종으로 삼았다.

영조가 정식을 삼도록 한 명에 따라

정조 때 편찬된 법전인 『대전통편』 「형전」 〈추단(推斷)〉에 ‘극악한 역적이라도 그의 아내는 처형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대전통편』의 이 조항은 『속대전』 「형전」 〈추단(推斷)〉에서

‘거병한 역적의 괴수는 형과 아우, 아내와 첩을 모두 연좌시켜 처형하되, 거병한 경우가 아니면 본율(本律)만 적용한다.’라고 한 조항에 대한 주석이다.

여기에서 본율은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 〈적도(賊盜)〉에 ‘모반(謀反)이나 대역(大逆)을 저지른 역적은

그의 아버지와 16세 이상의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하고,

15세 이하 아들, 어머니와 딸, 아내와 첩, 할아버지와 손자, 형과 아우, 손위 누이와 누이동생, 아들의 아내와 첩은 노비로 삼으며,

백부와 숙부, 형제의 아들은 3000리 유형에 처하여 안치(安置)한다.’라고 한 조항을 가리킨다.

즉 역적의 아내는 여종으로 삼기만 하고 처형하지는 않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괄운지례는 이괄과 신치운에게 연좌의 형률을 적용했던 전례를 가리키는 말로, 사료에서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괄의 아내에게 적용했던 형률과 신치운의 아내에게 적용했던 형률은 각각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에서 ‘괄운지례’라고 하면 ‘이괄과 신치운의 아내에게도 참형을 시행했던 전례’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역적에게 좀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할 때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