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용맹한 무사를 선발하여 조직한 기마부대로, 함경도의 감영(監營) 및 북병영(北兵營)과 남병영(南兵營)에 각각 두었다.
『숙종실록』 15년 10월 4일(정묘) 기사에는 남구만(南九萬)이 함경감사로 있을 때 친기위를 설치하였다고 하였는데,
남구만이 함경감사로 있었던 시기는 현종 12년(1671) 7월 12일부터 만 3년간이었으므로, 그 시기에 최초로 친기위가 설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숙종 32년(1706)에 간행된 『전록통고(典錄通考)』의 「병전(兵典)」 〈군제(軍制)〉에서는 숙종 10년(1684)에 친기위를 설치하기 시작하여
감영 및 북병영과 남병영에 각각 600명씩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는 처음 설치한 뒤로 유명무실해진 친기위를 다시 정비하기 시작한 때를 기점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친기위를 대상으로 해마다 4차례씩 시행하던 도시(都試)를 친기위도시(親騎衛都試)라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선거고(選擧考)」 <과제(科制)> ‘무과(武科)’에서는 숙종 10년(1684)부터 친기위도시가 시행되었다고 하였다.